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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3 | 83 | === 개전과 위장 평화기 (1939년 9월~1940년 4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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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4 | 84 | 1939년 9월 1일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유럽에서 전쟁이 발발했다. [[루이나]]는 영국·프랑스와의 동맹 조약에 따라 참전을 선언했으나, 이후 반년간 서부 전선에서 양측 육군이 요새선을 사이에 두고 대치만 거듭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해상에서도 주력 함대 간의 전면전은 벌어지지 않았다. 훗날 '위장 평화기' 혹은 '가짜 전쟁'이라 불리게 되는 이 기간, 신문들은 "선전포고된 평화"라는 자조 섞인 표현을 썼고, 루이나 국내에서는 크리스마스 전에 강화가 성립되리라는 낙관론까지 퍼져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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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6 | | 그러나 바다에서는 이미 조용한 전쟁이 진행되고 있었다. 독일 해군은 개전이 임박했음을 감지한 [[1939년]] 8월 말, 장갑함 2척과 보급함들을 미리 대서양의 대기 해역으로 내보낸 상태였다. 개전 선언과 동시에 이들은 통상파괴 작전에 돌입했고, 남대서양과 인도양까지 넘나들며 수개월간 상선 10여 척을 격침했다. 격침 톤수 자체는 크지 않았으나 파장은 그 몇 배였다. 단 한 척의 습격함을 잡기 위해 연합군은 순양함과 항공모함으로 구성된 수색 전대를 8개나 편성해 대양 전역에 뿌려야 했으니, 통상파괴전이 강요하는 비대칭적 소모의 예고편이었던 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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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6 | 그러나 바다에서는 이미 조용한 전쟁이 진행되고 있었다. 독일 해군은 개전이 임박했음을 감지한 1939년 8월 말, 장갑함 2척과 보급함들을 미리 대서양의 대기 해역으로 내보낸 상태였다. 개전 선언과 동시에 이들은 통상파괴 작전에 돌입했고, 남대서양과 인도양까지 넘나들며 수개월간 상선 10여 척을 격침했다. 격침 톤수 자체는 크지 않았으나 파장은 그 몇 배였다. 단 한 척의 습격함을 잡기 위해 연합군은 순양함과 항공모함으로 구성된 수색 전대를 8개나 편성해 대양 전역에 뿌려야 했으니, 통상파괴전이 강요하는 비대칭적 소모의 예고편이었던 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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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8 | 88 | 이 초기 습격전은 1939년 12월 남대서양에서 극적인 결말을 맞았다. 연합군 순양함 전대가 장갑함 1척을 포착해 손상을 입혔고, 중립국 항구로 피항한 이 배는 수리 기한을 넘기자 출항 직후 승조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스스로 배를 폭파해 가라앉혔다. 함장은 며칠 뒤 "함과 운명을 같이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자침 사건은 연합군 측에 개전 후 첫 승전보로 대대적으로 보도되었으나, 동시에 독일 해군 수뇌부에게는 뼈아픈 교훈을 남겼다. 단독 항행하는 습격함은 결국 수적 우세에 몰려 소모된다는 것, 따라서 다음 출격은 추격 함대를 정면에서 뿌리칠 수 있는 고속전함 전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결론이 이듬해 뤼첸스의 내해 침입 작전으로 이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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